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케난 에브렌 (문단 편집) == 대통령직 재임 == 케난 에브렌이 정권을 잡은 기간은 모든 독재정치가 그렇듯이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시기이다. 대부분의 튀르키예인들은 그의 재임기를 튀르키예 역사상 가장 어둡고 잔인한 역사로 정의한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250,000명에서 최대 650,000명까지의 민간인이 에브렌 정권 하에서 구속되었으며 이 중 14,000여 명이 [[시민권 박탈|시민권을 박탈당했고]] 50여 명이 처형되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암살과 숙청 등은 이것의 수십 배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된다.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과 영장 없는 구속, 고문 역시 횡행했는데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군과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으며 일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또한 그는 기존 수권 정당과 정치인들[* 쿠데타 이전의 총리들이던 쉴레이만 데미렐, 뷜렌트 에제비트와 제3당 국민구제당의 당수로 부총리를 역임하던 네즈메틴 에르바칸 등이 그 피해자이다.]의 활동을 모두 금지하고 관제 야당만을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허용했고, 초월적인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신헌법으로 어렵게 유지되어온 튀르키예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반면 에브렌에게는 튀르키예의 경제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살려낸 지도자라는 상반된 수식어 역시 붙는다. 1970년대 후반 튀르키예의 경제는 공화인민당과 정의당, 민족주의행동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면서도 그 어느 당도 해법을 내놓지 못해 점점 파탄의 경지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케난 에브렌은 취임 후 강력한 통화 정책을 기반으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최소화하고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통해 튀르키예의 경제와 산업을 세계화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중서부 지방에 비해 낙후되어 있던 동남부 [[아나톨리아]]를 개발하여 근대화시킨 것도 에브렌 집권기의 일이다. 1982년 12월 튀르키예 대통령 최초로 방한해서 [[전두환]] 대통령과 [[https://www.youtube.com/watch?v=IBvRveKdmqM|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이후 2004년 당시 총리이자 현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방한에 이어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튀르키예 방문으로 23년 만의 국가원수 답방이 이루어졌다. 1989년 11월 9일에 7년의 임기를 마감하고 대통령직을 퇴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